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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이키의 대명사 스우시, 그리고 조던과의 만남

by @#%#@@!#@!#@9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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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Nike)는 미국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입니다. 대표 상품인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로고

흔히 나이키 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습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였습니다.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습니다. 로고가 발탁되고 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 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코르테즈 슈 독 팩 출시로 알려진 이야기로는 본래 나이키라는 회사명은 블루리본 스포츠라는 예전 회사명에서 바꾼 이름으로 또 다른 회사명 후보로는 팔콘과 디멘션 식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셋 다 로고가 달랐으며 필 나이트는 그중에서 나이키라는 회사명과 스우시를 택했습니다.

스우시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습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난 후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됩니다. 이 동상은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습니다.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 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 2000년 은퇴했습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 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코르테즈 레트로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스우쉬의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초창기 다음의 스우쉬 디자인이었고, 이를 복각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자수로 박을 정도로 얇고 조금 안정감이 덜 듭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많이 거쳤고, 조금 더 형태에 있어서 안정적이게 되었습니다.

 

 

역사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습니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습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 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습니다.

1971년 블루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 초창기에 자국 은행에 대출상담을 받으러 갔으나 거절당하고 한 담당자가 위층에 일본 상사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상담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이 니쇼 이와이(현 소지츠)입니다. 니쇼 이와이는 나이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또한 나이키가 당시에 생산거점을 일본에 두고 있었는데 그 위탁생산을 했던 곳이 바로 아사히 슈즈입니다.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든가, 사장 앞에서 경쟁사 신발을 신는 패기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습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와 겹쳐 아디다스의 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맙니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 게 피트니 스지 스포츠가 아 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했으나... 그래도 미국이 홈 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함과 동시에 미국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키게 됩니다. 이때쯤부터 아디다스는 전 세계 시장 지분에서 나이키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실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론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론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됩니다.

나이키는 많은 회사들을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습니다. 2004년에는 스타터, 2008년엔 엄브로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손대는 것 같은지(...) 자신들의 중심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스타터, 바우어 하키, 엄브로, 콜한 순으로 처분되고 현재는 컨버스와 헐리만 남아있습니다.

이 블루리본 스포츠, BRS는 나이키에서 다시 디자인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기미가 보입니다. 새로운 BRS의 로고를 디자인한다던지.. 그런 형식입니다.

 

 

여담

 

공식적인 읽는 방법은 "나이키"지만 의외로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대체로 유럽에서 나이크로 읽는 경향이 있고 특히 영국은 영어의 종주국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오히려 이에 의문을 표하면 Bike도 바이키라고 읽을 거냐고 묻는 식으로 반박한다고 합니다.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의 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한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입니다.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피니시라인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나이키는 1981년 (주)화승그룹 계열사인 (주)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기사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주)삼양통상과 50대 50의 자본제휴로 한국 나이키를 설립합니다. 기사 1989년 삼 나스 포츠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 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합니다.


여느 글로벌 신발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은 OEM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데 한국의 태광실업이 전체 물량의 10%를 책임지며 나이키 내 OEM 3위 안에 든다고 합니다.


시그니처 제품들은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츠 스타와도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넴과 콜라보하였고, 2010년대 초반에는 칸예 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콜라보 스니커의 레전드 AIR YEEZY를 남겼습니다. AIR YEEZY는 그동안 나이키에서 해온 방식과는 다르게 칸예 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라는 점입니다. 이는 당연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신발의 가치마저 바꿔놓았습니다. AIR YEEZY의 성공 이후 칸예 웨스트는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당했고, 이후 경쟁사 아디다스와 2조가 넘는 금액에 손을 잡았습니다. 그가 떠나고 여러 스타들과 협업했으나 칸예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는데... 마침내 2018년 래퍼 트래비스 스캇과 내놓은 신발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스니커 시장을 다시 한번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그의 레이블인 CACTUS JACK의 이름으로 스니커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2015년 아디다스가 전 세계 6개 도시(뉴욕, LA,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2017년 나이키는 상기된 6개 도시에 추가로 6개 도시(서울, 베이징, 베를린, 바르셀로나, 밀라노, 멕시코시티)를 더해 도합 12개 도시를 중점 판매 거점 도시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래퍼 Beenzino는 다이내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습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며, 평소 빈지노는 나이키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빈지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나이키의 협찬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빈지노의 의류기업인 IAB STUDIO와 나이키와 종종 협업하고 있습니다.


애플 CEO 팀 쿡이 나이키의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는데 이 영향인지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습니다. 아이팟 없이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고 합니다. 아이팟이 시들해진 지금은 애플 워치 시리즈에 나이키 에디션을 추가해 판매 중입니다.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 연관이 꽤 있습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콘셉트카를 수록했습니다.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콘셉트카 발표 예정입니다.


창립자 필 나이트의 아들 트래비스 나이트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와 범블비가 있습니다.


2019년 2월 20일에 미국 농구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의 PG 시리즈 농구화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찢어지는 바람에 넘어져서 경미한 무릎 부상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해당 선수가 속한 팀이 라이벌전에 져서 나이키는 전방위적으로 욕을 엄청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이언 윌리엄슨 본인이 같은 신발을 오래, 자주 착용하여 생겨서 일어났다고 밝혀졌습니다. 이후 자이언은 카이리 어빙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었고, NBA 및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입성 후, 에어 조던과의 신인 역대 최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Nike Run Club이라는 러닝 보조 애플리케이션과 Nike Training이라는 운동 보조 애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라는 명칭과 나이키 로고를 붙인 것만으로 광고 효과가 충분하다 판단했는지 무료 앱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오는 신상품 안내를 제외하면 추가 광고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쇼미 더 머니 5 상 등급 참가자들의 싸이퍼에서 슈퍼비가 '나이키'를 네 번 말한 후 '방금 내 가사처럼 너넨 다 편집'이라는 랩을 했습니다. 이는 쇼미 더 머니가 아디다스의 협찬을 받는다는 점에서 경쟁 신발 회사를 언급하면 편집될 것임을 노린 것입니다.


과거 한국 TV 방송에서 출연자가 '나이키'를 외치는 것은 해당 장면을 편집해달라는 은어였습니다. 방송법 상 직접적인 상표를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음이 짧고 편한 상표명인 나이키를 주로 외쳐서 해당 장면이 일부러 편집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때 랜스 암스트롱이 현역일 때만 해도 사이클 분야에 진출해있었으나 지금은 철수했습니다.


나이키 '조던 브랜드' 회장이 10대 시절 살인죄로 복역했던 어두운 과거를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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